우승 경력
2021 | 부에노스 아이레스 |
2019 | 로스 카보스 |
2018 | 리오 |
2016 | 이스탄불 |
디에고 슈워츠만의 증조할아버지는 나치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서 탈출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인지 디에고도 고난에 대해 잘 압니다. 지금 디에고의 임무는 단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키 183cm(6피트) 미만인 선수가 메이저 단식 우승을 한 것은 2004년이 마지막입니다. 당시 디에고 슈워츠만은 열한 살이었습니다. 2004년 6월의 한 오후 파리에서, 가스통 가우디오는 같은 아르헨티나 선수인 (그리고 키가 175cm인) 기예르모 코리아에게 8연패를 한 후에 다시 결승에서 맞붙었고 풀세트 경기 끝에 승리했습니다.
이것이 디에고에게 아주 크게 각인되었습니다. 자기보다 조금밖에 크지 않은 같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클레이코트의 끝판왕인 롱랑가로스에서 싸우는데다, 언더독이 초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역전극을 펼치며 생애 최고의 경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이 경기는 디에고에게 절대 포기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2년 후 의사가 디에고에게 170cm 이상 크기는 힘들다고 했을 때, 디에고는 좌절하고 프로 선수가 된다는 꿈을 접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류와 보석 사업에서 정부 규제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한 경험이 있는 부모님 리카르도와 실바나는 네 아이중 막내인 디에고가 꿈을 버리지 못하게 했고, 키가 작다고 해서 바라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디에고는 1992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나고 축구스타 마라도나의 이름을 따 세례를 받았습니다. 마라도나는 1986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며, 현재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입니다. 슈워츠만은 당시 아르헨티나 아이들이 그렇듯 축구에 빠져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카 주니어스 팬이었던 디에고는 공을 발로 차는 것보다 치는 것에 소질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테니스는 주변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능력으로만 칠 수 있다는 점도 디에고에게는 더 잘 맞았습니다.
당시 가정 형편이 안 좋아 테니스는 무리였지만, 슈워츠만의 가족은 디에고를 지원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융통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예를 들면 디에고는 주니어 대회에 나가면 경기가 없을 때 인기 축구팀 로고가 새겨진 고무 팔찌를 팔아서 경비와 비행기 값에 보탰습니다. 이 팔찌는 디에고의 엄마가 만들었습니다.
혼자 외국에 시합을 다니다보니 디에고는 향수병에 걸렸지만, 어려운 환경에서의 선수생활은 디에고를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선대들의 고생에 비하면 자기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디에고의 외증조 할아버지는 폴란드 유태인이었는데 홀로코스트 때 나치 수용소로 실려가는 기차에서 탈출했고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에서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디에고는 주니어 시절 정상급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열여섯 살 때 투어 경비, 코치 비용, 피트니스 트레이너 지원을 받을 정도의 두각을 보였습니다. 2010년에는 처음 출전한 주니어 US 오픈 1라운드에서 떨어졌지만, 프로로 전향해서 퓨처스 대회 우승을 했습니다.
그 후 2년 간 그는 퓨처스 경기에서 7회 더 우승했고, 모두 클레이 코트였습니다. 이후 그는 챌린저 리그로 올라갔고 고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챌린저 리그에서도 그는 승승장구했고 공격적인 베이스라인 플레이 스타일을 더 발전시켰습니다. 코트 양쪽에서 강한 스트로크를 치면서 이동 속도가 빠르고 떠있는 공을 치는 능력이 좋았기 때문에, 그는 공격과 반격에 능했고, 세계적인 선수들의 스타일을 여기에 더하면서 돋보이는 리턴 게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2013년 2월 ATP 데뷔전에서 같은 나라 선수 호라시오 제발로스에게 3세트만에 패했지만, 그 다음 달 고향에서 브라질 선수 토마스 벨루치를 상태로 ATP 첫 승을 거뒀습니다. 벨루치는 당시 랭킹 38위로 슈워츠만에 비해 랭킹이 128위나 높았습니다. 일주일 후 디에고는 아카풀코에서 라파엘 나달과 첫 대결을 했으며, 다음 해에는 롱랑가로스에서 열린 그랜드 슬램 데뷔전에서 동료 가스타오 엘리아스에게 승리하였고, 로저 페더러와의 경기에서 졌지만 선전하면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덕분에 그는 처음으로 100위권에 올랐으며, 그 해 US 오픈 첫 경기에서 챔피언 노박 조코비치에게 완패했지만 ATP 챌린저 투어 경기들에서 우승하면서 61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아르헨티나 데이비스컵 팀 선수로 2015년 준결승에 진출했으며, 다음해에는 첫 ATP 단식 우승을 했습니다. 이스탄불 대회였고, 자기보다 순위가 높은 선수 네 명을 꺾었고, 세 명에게는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슈워츠만은 결승에서 2번 시드로 올라온 그리고 디미티로프를 꺾었습니다.
그 이후 슈워츠만은 시즌 랭킹을 계속 올렸습니다. 단식 우승 두 번을 더해서 20위권에 진입했고, 대회 10위권에 7회 진입했으며, 빅3 플레이어 모두에게 세트를 따냈고, 그랜드슬램 준준결승에 세 번 올랐습니다. 그 중 두 번은 뉴욕 대회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경기 중 가장 값진 승리는 2018년 롤랑가로스 4라운드입니다. 당시 그는 남아프리카의 케빈 앤더슨에게 2:0으로 지다가 3:2로 역전했습니다. 디에고는 후에 이 경기가 ‘가장 감동적인 경기’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골리앗들의 싸움에서 계속 이겨가는 디에고를 보며, 꿈과 정신력이 중요하지 키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