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경력
2022 | 멜버른 |
2021 | 신시내티 |
2021 | 윔블던 |
2021 | 슈투트가르트 |
2021 | 마이애미 |
2021 | 멜버른 |
2020 | 아들레이드 인터내셔널 |
2019 | 프랑스 오픈 |
2019 | 버밍햄 |
2019 | 마이애미 |
2019 | WTA 파이널 |
2018 | 노팅엄 |
2018 | 주하이 |
2017 | 쿠알라룸푸르 |
2011년 불과 15세의 나이에 애슐리는 윔블던 유소년 챔피언십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3년 그녀는 같은 해 캐시 델라쿠아와 함께 호주 오픈, 윔블던 과 US 오픈의 복식 결승에 진출하여 역사 상 가장 성공적인 WTA 데뷔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2014년 하반기 그녀는 테니스를 쉬기로 결심하고 2015년 크리켓으로 전환했습니다. 2016년 애슐리는 테니스로 복귀하여 2017년에 첫 상위 20위권 내로 진입하며 시즌을 마쳤습니다. 2019년 6월 그녀는 파리에서 개최된 프랑스 오픈에서 첫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2주 뒤 버밍엄에서 열린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애슐리 바티는 어떻게 최고가 되었는가?
호주 태생의 애슐리 바티는 스포츠와 관련한 모든 종목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고난은 있었고, 언제나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애슐리 바티가 해내지 못하는 구기종목이란? ZERO
평균 77타를 치는 에이스 아마추어 골퍼? 맞습니다. 전문 크리켓 선수? 그렇죠. 세계 1위 메이저 테니스대회 챔피언? 물론입니다.
호주 출신의 이 다재다능한 상위 랭킹 멀티 플레이어는 1996년 호주 퀸즈랜드 브리즈번과 가까운 마을 입스위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언니들인 알리와 사라와 함께 네트볼을 배웠지만, 애슐리는 5살의 나이에 그녀의 부모님인 롭과 조시로부터 테니스를 처음 배우자마자 바로 사랑에 빠졌습니다.
브리즈번 테니스 센터의 코치 짐 조이스가 바티의 재능을 빠르게 발견했으나, 프로 레벨의 운동을 하기 위해 드는 비용적인 문제로 인해 바티의 부모님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애슐리가 테니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저희는 네트볼을 배우고 있었어요.’ 그녀의 언니들이 선수의 목소리에 개재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자 엄마와 아빠가 “너희는 테니스를 치지 않으면 안돼, 세 자매가 두 가지 운동을 하느라 여기저기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야’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저희도 테니스를 시작했어요. 아주 좋았어요. 사실 저희는 테니스를 치는 것이 꽤 행복했고, 나중엔 완전히 빠지게 되었어요. 저희는 화목한 가족이고, 화를 내본 적이 없어요. 저희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죠.’
이것이 애슐리 바티가 영원히 감사하는 부분이라고 계속 말하는 부분입니다. 조이스의 지도 아래, 바티는 호주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주니어 선수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성공은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열대기후의 퀸즈랜드에서 성장하면서, 바티는 12살의 나이에 처음 잔디 구장에서 경기를 뛰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 그녀는 윔블던 여자 주니어 단식 타이틀을 거머쥐게 됩니다. 이는 그녀가 절대 잊지 못할 승리 중 하나 입니다. ‘제가 얻은 모든 경험이 그 한 주에 나왔다고 생각해요.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쳐서 모든 것이 흐릿했고, 저로서는 정말 처음 맛보는 경험이었습니다’ 2019년 Wimbledon.com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치 어제같이 기억나요.’
그녀가 18살이 되었을 때, 바티는 이미 3번의 메이저 복식 결승진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혹독한 투어 스케줄과 랭킹과 대회 상금에 대한 끊임없는 압박은 이미 압박감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향수병에 시달리던 10대 소녀에게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2014년 US 오픈에서 1라운드 패배 후, 지쳐버린 바티는 경기에서 무기한 휴식을 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듬해, 그녀는 유년기에 첫 사랑인 크리켓과 다시 인연이 닿았습니다. 바티는 브리즈번 히트 여자 크리켓 팀에 합류하여 첫 번째 2015-16 여성 빅 배시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휴식기는 테니스 계의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지만, 바티에게는 한 걸음 물러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애슐리는 언제나 슬펐어요.’ 그녀의 아머지 롭 바티는 2020년 5월 호주의 액티브 SG/Yoyage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주최한 웹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슐리는 코트에서 자기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아내에게 애슐리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말했어요. 그녀의 행복이 무엇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자매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애슐리가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이 밖에 나가 테니스를 치며 비참하게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바티는 크리켓 경기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테니스가 여전히 손짓했습니다.
2016년에 그녀는 마침내 복귀를 결심했고 이번에는 아무도 이 어린 호주 선수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 호주 코치 크랙 시저와 함께 뛰고 있는 바티는 2017년에 상위 20위 안에 들었습니다. 돌풍은 2019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바티는 롤랑 가로스에서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고 시즌 마무리 WTA 결승전을 포함해 다른 3개의 타이틀을 차지하며 세계 1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2016년 623위로 투어에 복귀한 선수치고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바티는 본격적인 잔디 코트 시즌의 시작 전, 파리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영국령의 땅에서 잔디 구장을 만들어 두 차례 골프를 치면서 프랑스 오픈 결승전에서 체코의 10대 마르케타 본드루소바를 상대로 연속 승리를 거둔 것을 축하했습니다.
그녀의 우상이자 동료인 호주 출신의 이본 굴라공 콜리와 마찬가지로 바티는 이제 그랜드 슬램 단식 챔피언이자 세계 1위입니다. ‘이본은 테니스 계의 천재적인 챔피언입니다. 그녀는 당신이 만나볼 수 있는 가장 진실된 인간이며 그녀와 동일선상에서 함께 언급되는 것조차 저에게는 약간 충격적인 일입니다.’ 라고 작년 CNN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바티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그녀는 저의 영감 그 자체이자, 멘토,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경력에서 이루어낸 기록에 근접해 간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이 놀라운 일입니다.’
바티는 애들레이드에서 우승하고 호주 오픈 준결승에 진출하는 등 2020년을 순조롭게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3월 모든 테니스 경기가 중단되었을 무렵 캘리포니아주 인디언 웰스에서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격리 기간 동안 바티는 퀸즈랜드에 있는 집에서 가족과 연인, 연습생 프로 골퍼인 개리 키식, 그리고 그들의 개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또한 골프 핸디캡을 10에서 5로 향상시켰습니다.
바티는 2020년 5월 시드니 모닝 헤럴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능한 한 일주일에 몇 번씩 밖에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덕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산사인 여동생 사라와 방사선과에서 일하는 어머니 조시를 둔 바티는 격무에 시달리는 일선 직원들에 대한 특별한 감사의 뜻으로, 전 메이저 우승자이자 동료인 퀸즈랜더 출신 테니스 선수 패트릭 래프터와 팀을 이루어 로얄 브리즈번 여성병원에서 헬리패드 테니스장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녀는 또한 병원의 코로나19 병동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바티는 롤랑 가로스의 클레이 코트에서 자신의 타이틀을 방어할 수 없다는 점이 애석했으나, 강제적인 휴식을 통해 그녀는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억지로 라켓을 내려놓아야 하는 게 어떤 면에서는 신선하기도 했어요.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 곳이라는 관점이 긍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저희는 잠시 점검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