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존 매켄로를 가장 위대한 테니스 영웅의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80년 대 초, 특히 1981년부터 84년까지, 그는 누구도 감히 이길 수 없는 선수로 평가받곤 했습니다. 1992년 그가 은퇴할 무렵, 그는 테니스 코트 위에서 셀 수 없는 승리했던 선수 경력을 되돌아보았습니다. 170주 연속 세계 챔피언, 77번의 단식 타이틀 우승 (7번의 메이저 우승), 72번의 중복 타이틀, 198번의 패배를 만회하는 877번의 승리 – 이러한 숫자들은 테니스 선수로서 그가 지닌 매혹적인 경력을 인상적인 방식으로 증명합니다.
테니스 칼럼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리차드 에반스는 이 뉴욕 출신의 선수가 18살일 무렵 존 매켄로를 처음 만났습니다. 에반스는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봉쇄 기간 동안 61세의 매켄로를 따라잡았고 매캔로의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맹렬히 불타오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시니어 테니스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존 매켄로가 어떻게 20년이나 더 어린 파워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에 대한 답은 바로 그의 체력에 있습니다. 이는 테니스 코트에서 볼 수 있던 섬세한 기술을 유지하는 동시에 여분의 힘까지 더해주는 라켓의 도움을 받는 방식입니다.
제가 존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오동통한 허벅지를 가진 18세의 그다지 튼튼하지 못한 소년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30년간 그가 편하게 지냈던 유년기보다 더 나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전성기 시절, 그는 오늘날 최고의 선수들만큼 신체능력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총 세번의 윔블던, 네번의 US오픈, 그리고 4번의 데이비스 컵에서 우승했습니다.
1994년 천재적이었으나 파란만장했던 경력의 마침표를 찍던 해, 그는 은퇴 후 무엇을 할 것 인가에 대한 생각에 커다란 변화를 겪었습니다. 선수 시절, 그는 은퇴 이후 시니어 테니스를 해보라는 제안을 비웃곤 했으나, 예상하시다시피, 그는 경쟁의식이 강하고 어찌되었든 승부 자체를 사랑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건강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소유했던 말리부의 집에 실내 클라이밍 시설을 완비한 체육관을 설치했고,뉴욕커 특유의 기질 덕분에 맹렬한 기세로 벽을 오를 수 있다면, 그는 30대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노력을 위해 말 그대로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단했습니다.
레전드 투어를 운영하는 전 호주, 프랑스 오픈챔피언 짐 쿠리어는 지난 세월을 거스르는 매켄로의 능력에 대해 더 이상 놀라지 않습니다. ‘저는 연습이나 경기에서나 그 누구보다 존과 많은 경기를 치루어 보았지만, 여전히 그의 서브를 읽을 수 없습니다!’라며 암담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존에 대해 비록 그의 Head라켓이 좀 더 영향을 주긴 하지만, 파워보다는 기하학적인 면이 더 큰 편입니다. 그는 여전히 상대편 샷의 각도가 더 깊어지기 전에 빠르게 발리를 해서, 정확하게 쳐냅니다. 그는 여전히 반응속도가 좋고, 좋은 발을 갖고 있어서 서브할 때 어깨를 깊이 회전시켜 상대방을 완벽히 속일 수 있습니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뉴욕커 매켄로는 3월 초 코로나로 인해 세계가 셧다운되기 시작할 무렵, 5번가에 위치한 자신의 넓은 아파트에서 저 멀리 떨어진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매켄로는 ‘모두가 BNP 파리바 오픈이 인디언 웰스에서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고, 저는 몇 차례 시범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러나 토너먼트 하루 전 토너먼트가 취소되었고, 결국 우리는 캘리포니아에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두 딸이 저희와 함께 했고, 다른 두 명도 그다지 멀리 살지 않아 운이 좋았습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말인즉슨, 팬데믹이 시작된 봄부터 본격적인 여름까지 매켄로는 아침마다 침실 창문 밖 말리부 비치에서 부서지는 태평양 파도의 리드미컬한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 년간, 매켄로는 영화배우들이 주로 머무르는 ‘더 콜로니 The Colony’에 집을 한 채 내지 두 채 정도 갖고 있었습니다. 더 콜로니는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작은 울타리 넘어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할 베리와 같은 배우들이 방해받지 않고 모닝 커피를 마시는 모래 정원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매켄로의 삶을 개방적으로 만든 또 하나의 원인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퍼시픽 하이웨이 건너편 언덕에 둥지를 튼 말리부 테니스 클럽과의 접근성입니다. 이 클럽은 인디안 웰스 테니스 가든을 보유한 오라클의 창립자 래리 앨리슨이 소유하고, 전 ATP투어링 프로인 트레이 월트키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매우 편하고, 제 발목이 말썽이라 움직이기 좀 힘들긴 하지만 테니스를 치기 위해 대부분 올라가는 편입니다.’ 약간의 좌절감이 흐르는 목소리로 맥켄로가 말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방송 경력을 갖고 있겠지만,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다른 방식으로 언제나 그의 성격의 일부였던 과민한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이 테니스의 전설은 부디 경기가 가능하길 바라고 있는 남은 2020년 동안, 캘리포니아와 올랜도, 플로리아에서 무관중으로 진행될 6개의 토너먼트 스케줄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최근 레전드 순위에서 하스와 제임스 블레이크에 이어 13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맥켄로는 투어 최고의 간판으로서 그의 역할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2015년 9월 헤드 래디컬 라켓으로의 전환이 맥켄로가 레전드 투어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맥켄로를 그의 나이보다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정밀함과 위치선정에 있다는 쿠리어의 말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하스나 필리포시스의 파워에 대응해야하는 부분에 있어서, 래디컬은 이 점을 뒷받침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맥켄로는 ‘전혀 같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저를 Head로 이끈 Head CEO 요한 엘리아슈를 소개해준 것은 비에른 보리였습니다. 요한을 알게 되면서, 그가 회사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하길 정말 잘했습니다. 래디컬은 게임에서 예리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파워를 더해주는 그들이 가진 가장 유연한 프레임입니다.’
존 맥켄로의 전설적인 경력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의 서브가 짐 쿠리어와 같은 사람들을 계속 혼란스럽게 하는 한 아마도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리차드 에반스의 글
WORDS BY RICHARD EV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