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경력
2017 |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
2016 |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
2015 |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
2014 | 바스타드 |
2014 | 우마그 |
지난 몇 년동안 HEAD의 오랜 앰베서더 파블로 쿠에바스가 언제 커리어를 마칠지 고민하던 순간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투어에 참가중이며, 2021년 1월 호주 오픈 격리 때는 인터넷에서 화제였습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쿠에바스는 자신도 여전히 테니스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이제는 투어를 다니기에 나이가 든 것인지 고민이었습니다. 2011-13 2년 간 무릎 부상으로 시즌을 날렸지만, 다시 싸워 2016년에는 우루과이인 최초로 세계 20위 안에 들었습니다. 2017년에는 다시 무릎 부상이 왔고, 2018년에는 오른발 주상골 골절로 미국 여름 하드코트 시즌을 놓쳤습니다. 이제 그만 하라는 신의 계시였을까요?

2020년 팬데믹으로 테니스가 멈춰 우루과이 집에서 시간을 오래 보낸 후, 쿠에바스는 한 가지 변화를 줬습니다. “저는 우루과이에 오래 머물러 있었는데, 제 테니스 실력에나 훈련을 위해서는 집에 머무는 게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21)프리시즌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어린 선수들과 많이 훈련했고, 동기부여가 많이 되었습니다. 에너지를 많이 얻고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예전 수준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테니스의 신은 잔인합니다. 쿠에바스는 시즌을 시작하기 위해 멜버른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루에 5시간 씩 훈련을 하는 대신 14일 간 완전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하루 24시간 내내 방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은 프리시즌에 맞게 몸을 만들고,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우루과이인의 창의성과 기발함은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가 2주간 영상을 올리며 새로운 팬이 무더기로 생겼습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That’s Life”음악을 틀고 “스파 데이”를 즐기고, 침대 매트리스에서 서핑을 하며, 멜버른의 뜨거운 여름을 재현하기 위해 증기가 가득하게 샤워를 하면서 맨손으로 라켓을 휘두르면서 그는 격리 기간을 잘 넘겼습니다.
완전 격리가 끝나고 며칠 안 되어, 그는 멜버른 워밍업 토너먼트 3라운드까지 올랐으며, 호주 오픈에서는 2라운드에서 호주의 알렉스 드 미노에게 패했습니다. 이 때 잔인한 테니스의 신이 또 나타났습니다. 쿠에바스는 왼쪽 5번 척골 골절을 당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우루과이로 복귀하며 시즌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남미의 클레이 코트 경기를 놓친다는 생각에 아쉬워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발에 무리가 안 되도록 쉬어야 했습니다. 우루과이로 돌아간 첫 날, 그는 물이 허리까지 차는 수영장에서 걸었습니다.
결국 5주 간 연습을 못했고, 부인 클라라 루이즈와 두 딸 알폰시아, 안토니아와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이 있어요.” 그는 2011-13, 2017, 2018년의 부상을 언급합니다. “그래서 저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참았습니다.”
쿠에바스는 4월 중순 몬테카를로에서 열리는 마스터즈 1000 ATP 투어에 복귀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는 1주일 후 세르비아 벨그라드로 향했고, 가는 길은 파나마에서 12시간 대기 및 터키로 12시간 비행을 포함하여 48시간이 걸렸습니다. 남미 선수들에게는 평상시에도 루틴한 여행은 없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내전근 염증이 생겼어요.” “엄청나게 아팠습니다.” 그는 인도의 로한 보파나와 복식 경기를 했지만, 첫 세트 이후에 기권해야 했습니다. 다음날에 있을 단식 경기가 다가오면서 통증은 줄었지만, 경기를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쿠에바스의 복귀가 지연된 것에서 끝이 아니라 연중 가장 좋을 때를 놓치게 됐습니다. 그가 보유한 투어 우승 기록 6회는 모두 클레이 코트였으며, 결승 진출한 10회 중 9회가 클레이 코트였습니다. 그는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특히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2016년에 두 곳을 순회하면서 커리어 하이 랭킹 19위를 찍었습니다. 2021년에는 같은 기회를 놓친 겁니다.
그는 전 대회 결승 진출을 했던 에스토릴 대회도 빠졌습니다. 그가 2019년 결승에 올랐을 때는 가족과 함께였지만 이제는 혼자 가야 합니다. “제 딸은 저와 함께 있는 것을 엄청 좋아하고, 제가 투어를 떠나면 보고 싶어해요. 저는 가족들과 많이 다녀요. 하지만 최근 2년은 그러지 못했네요. 요즘 같은 때는 아이들과 함께 다니기 힘듭니다.”
랭킹 시스템이 바뀌어서 쿠에바스는 2019년 에스토릴 대회의 랭킹 포인트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전 같은 토너먼트 성적을 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상이 서서히 사라지고, 위협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다닐 수 있다면 감정에도 도움이 더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상태로도 만족합니다. “제 에너지는 똑같아요.”
쿠에바스와 헤드의 오랜 인연
파블로 쿠에바스는 클레이 코트 탑10에 드는 선수이지만, 라켓 스폰서와의 관계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습니다.
“저는 열두 살 때부터 헤드 라켓을 썼으니까 거의 20년이 되었습니다. 옷은 갈아입을 수 있지만, 신발과 라켓은 갈아타기 힘들어요.” “편하게 느끼는 라켓이 있어야 합니다. 라켓 회사가 돈을 주는 것과 라켓으로 돈 버는 것은 다릅니다.”
쿠에바스는 젊은 시절 Ti를 썼고, 그 다음엔 래디컬을 썼습니다. 그 후 18년 간은 프레스티지를 썼습니다. 지금은 다시 래디컬을 씁니다. “어떤 때는 파워가 더 필요하고, 어떤 때는 컨트롤이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35살입니다. 지금은 파워가 필요하죠.” 하고 웃으며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