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경력

연도우승지
2021상트페체르부르크
2021슈투트가르트
2018런던 퀸즈 클럽
2017이스탄불
2016신시내티
2016바젤
2015모스크바
2014자그레브
2014델레이 비크
2014US 오픈
2014모스크바
2013자그레브
2012우마그
2012런던 퀸즈 클럽
2011상트페체르부르그
2010첸나이
2010자그레브
2009첸나이
2009자그레브
2008뉴헤이븐

2010년대 테니스 역사가 기록된다면, 마린 칠리치는 아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것입니다. 2010년대는 다섯 명의 독보적인 선수가 지배했는데, 이 다섯 명이 2010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10년 간 열린 40개 그랜드슬램 타이틀 중 한 개를 뺀 39개를 나눠 가졌습니다.

이들이 차지하지 못한 하나의 타이틀은 2014년 US오픈이며, 이것을 빼앗아간 선수가 칠리치입니다. 2014년 US 오픈 우승은 칠리치의 선수경력 최고의 이틀일 것입니다. 준결승에서는 케이 니시코리가 노박 조코비치를 꺾은 터라 테니스팬들은 로저 페더러가 우승을 거머쥘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다음 준결승 경기에서 선 굵은 칠리치의 플레이에 무너졌습니다. 칠리치는 다음날 전날과 똑같은 경기 실력으로 결승에서 니시코리에게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마린의 특별한 순간 : 2014 US 오픈

현대 테니스 역사 150년 중 가장 치열한 시기는 조코비치가 큰 대회를 지배했습니다. 2011년 호주 오픈부터 2021년 윔블던까지 있었던 그랜드 슬램 대회 42회 중 19번은 조코비치가 우승했습니다. 그는 사상 최장기간, 압도적으로 오랫동은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한 선수입니다.

실릭은 ‘그 때 미국 오픈은 두 가지 기억이 있어요.’라고 합니다. ‘첫번째는 우승한 순간입니다. 코트 바닥에 누워 전광판에적힌 “2014 US 오픈 우승자 마린 칠리치”라는 문구를 올려다봤죠. 믿기 힘든 감정이랄까, 온전한 행복감이랄까, 뭐라고 불러도 상관 없어요.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대회가 끝나고 제가 사는 곳이자 태어나 자란 곳인 메주고리에에 왔을 때 인구가 5,000명인 이 곳에 20,000명이 모여 축하해준 것이었습니다. 메주고리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이기 때문에 이 환영은 놀라웠어요.’

초심을 지키려는 듯, 칠리치는 부모님 집에 있는 옛날 자기 방 벽에 신문기사 하나를 지금도 붙여놓고 있습니다. 기사에는 그가 12세 때 주니어 선수로 시합을 다니기 시작할 때 한 인터뷰 내용이 있고, 그는 윔블던에서 경기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이 꿈을 이뤘고, US 오픈 우승, 다른 두 메이저 대회 결승 진물,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우승 3회, 마스터스 우승(신시내티) 등을 하며 목표는 초과달성했습니다. 여기에 풀리그 방식으로는 최후였던 2018년 데이비스컵에서 크로아티아에 우승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30대 초반이 된 칠리치는 여전히 테니스를 사랑하지만, 웹사이트를 가보면 그는 N잡러입니다. 운동선수로서의 칠리치도 있지만 자선사업가로도 활발히 활동합니다. 자선단체를 운영하는 정상급 선수는 여럿이지만, 그의 사회환원 의지는 특별합니다.

중요한 건 기회 확대

‘오래 전 저는 아주 재밌는 책을 하나 읽었는데, 바로 맬컴 글래드웹의 아웃라이어입니다.’ ‘이 책은 성공한 사람들이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빌 게이츠 얘기를 많이 하는데, 빌 게이츠가 학생 때 친구 엄마가 컴퓨터 회사를 차려 학생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했고, 그 기회가 어떤 결과가 됐는지 보세요. 빌 게이츠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컴퓨터 기업가가 되었고, 기부도 아주 많이 합니다.’

‘이걸 보니까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너무 많은데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제 재단은 스포츠, 과학, 예술 분야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이 재단에 기부하면 이런 친구들을 직접 도울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금액이라도, 한 두 명만 꿈을 이루게 되어도 성공이죠.’

코로나 19로 ATP가 중지되었을 때 그의 랭킹은 37위였습니다. 37위면 이미 전성기는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칠리치는 몇 달 간의 장기 휴식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바이러스로 테니스가 전부 중단되기 딱 5주 전인 1월 31일, 부인 크리스티나가 첫째 아이 발도를 낳았습니다.

‘바이러스로 인한 고통과 비극 속에서 한 줄기 빛이 있었어요.’ ‘저는 토너먼트 때문에 아들을 못 보는 기간이 겨우 2주였고, 그 다음에는 갑자기 못 다니게 됐죠. 봉쇄 기간에 우리는 크리스티나의 고향인 크로아티아 남부 듀보르니크 근처에서 지냈고, 저는 새들을 관중으로 두고 연습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가족과 함께 보냈습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면서도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칠리치가 남은 선수 생활동안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빈 페이지로 남아있지만, 그는 테니스에서 할 게 아직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긍정적인 성격으로, 더 노력해서 다시 정상에 오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는 선수생활동안 지속되어온 헤드와의 관계 덕분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헤드는 원래 굉장한 회사이기도 하지만, 제가 파트너십을 맺기에 여기 말고 더 좋은 회사는 없을 것 같아요.’ ‘저랑 일하는 헤드 직원들은 일도 잘하지만 단순 사업상 관계를 뛰어넘어 생각하고, 그 중 많은 분들과 친구가 됐어요. 테니스 선수 생활에서 가장 좋은 기억에는 헤드가 함께하는데, 단지 손에 헤드 라켓을 쥐고 있어서가 하니라 모두가 한 팀으로 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입니다.’